(이 책은 내가 읽고 있는 양육서 중 하나이다.)
교육관이 있는 부모라면, 자녀를 자신이 믿고 있는 교육관대로 키우게 마련이다.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입히지 않고, 제대로 사회에 적응할 수 있도록 규칙을 강조하며 엄격하게 키우는 부모, 집안의 학풍 또는 자신이 이루지 못한 꿈을 대신 이뤄주길 바라는 대리만족감에 의해 공부를 잘 하고 다른 아이보다 뛰어날 수 있도록 여러가지를 가르치는 부모...
또 자신이 자유롭지 못하고 억눌려 자랐기 때문에 나처럼 자라지 말라는 마음에, 자유롭고 행복하게 또 가능성과 기회를 최대한 열어주어 자신의 가능성을 탐색하고 스스로 나아갈 수 있도록 길만 보여주는 교육을 하고자 하는 나 같은 부모.
시대는 예전에 비해 많이 풍요로워졌고, 평균적으로 자녀를 한둘 밖에 낳지 않는 부모들은 자녀가 무엇보다 귀하다. 그래서 수많은 종류의 양육서적이 서점에서 팔려 나간다. 양육에 관한 책들은 저마다 조금씩 다른 목소리를 내고, 부모들은 어떻게 키워야 할 지 기준 잡기가 힘들다. 마음 같아서는 정말 잘 키우고 싶은데, 어떻게 키우면 잘 자랄 수 있을까.
그런데 내가 봐왔던 양육서 중, 훈육하는 방법 등에 대해 나오는 종류의 책이 아니라 좀더 원론적인 양육서를 봤을 때, 요즘 추세는 아이들에게 좀더 자유를 주자는 흐름, 성품이 바르게 되도록 하자는 흐름으로 가고 있는 것 같다. 부모가 어릴 때 학습지를 풀고, 학원에서 종일 앉아 있는 시간보다 마당에서 흙장난하고 뒹굴고 했던 기억이 더 많았던 것처럼 말이다.
tv에서도 나왔지 않은가. 아이들은 부모가 손대기 시작할 때부터 망가지기 시작한다고. 요즘 초등학생들, 중고등학생들을 보면서 사람들은 놀란다. 아이들은 지식을 흡수하는 것뿐 아니라, 시대의 퇴폐적인 문화까지 흡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더 큰 일은 아이들이 서로 손해보지 않으려고 한다는 것이다. 이 아이들이 자라서 이 나라를 이끌어갈 텐데, 이 아이들은 너무나 이기적이다. 어른이 이기적이기 때문이다.
우리 아이가 어떻게 자랐으면 하는가. 부모는 끊임없이 원론적인 문제로 되돌아가야 한다. 부모부터 기준을 똑바로 세우지 않고 그저 흐름에 휩쓸려 간다면, 아이는 부모의 '마루타'가 되지 않겠나. 아이는 부모의 대체물도 아니고, 대리만족용도 아니고, 가풍을 이어가야 하는 존재도 아니고, 그저 하나의 거룩한 인격체로 태어난 하나님의 선물이다. 다 같이 하나님의 자녀인 것이다.
아이는 무엇이든 할 수 있고, 무엇이든 될 수 있다. 아이 안에 내재된 힘을 믿는 것. 이것이 부모가 가질 또 다른 기준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