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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취미/과제

4강

by 피스메이커 2007. 6. 18.
 

그리스도께서 대위임령을 선포하신 뒤 2000년이 흘렀다. 그러나, 아직 세계에는 그리스도인보다 비그리스도인이 더 많다. 게다가, 대위임령과는 상관없이 살아가는 그리스도인과 기독교 국가임에도 복음의 영향력이 전혀 힘을 쓰지 못하는 지역도 있다.

2000년 동안 기독교 선교의 역사를 살펴보면, 초대교회의 폭발적인 부흥과 암흑시대, 그리고 온갖 시행착오와 문제들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어떻게 선교史를 이끌고 가셨는지 놀랍기만 하다. 앞에서 언급된 기독교인의 부정적인 부분들에도 불구하고, 헌신된 소수의 그리스도인을 선택하셔서 사용하셨던 것이다. 또한 회복시키기로 작정한 사람과 종족과 민족들을 그리스도인에게로 보내기까지 하셨다.

고대시대, 하나였던 인류가 전 세계로 퍼진 이후, 언어 뿐 아니라 문화 역시 서로 이해하기조차 힘들 정도로 이질적으로 변해왔다. 하나님께서 직접 손을 대신 피조물이 하나님을 모르고, 전혀 다른 우상과 신들을 섬겨왔던 것을 생각하면 안타깝기 그지없다. 단적으로 말하면, 우리도 다를 게 없다. 한국인은 한국 문화에 ‘세뇌’되었으며, 심지어 기독교를 한국 토속종교와 혼합시키기까지 하였다. 어쩌면 그것은 당연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만일 고국을 떠나 다른 나라로 헌신하기 위해 가고자 한다면, 우리는 한국 문화의 ‘세뇌’에서 벗어나야 할 지도 모른다. 심지어 태어났을 때부터 받아들여왔던 사고방식도 바꿔야 할 것이다. 전혀 다른 사고방식, 생활방식을 받아들이고 내 것으로 해야 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힘든 문화적 충격이 아니겠는가.

선교사가 된다는 것은 문화적 측면에서 세 부분이 있음을 강의를 통해서 배웠다. 첫 번째는, 자국 문화를 강요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마 강요한다기보다는 자국 문화가 올바른 것이라는 인식 자체부터 버리는 훈련을 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 ‘문화의 상대성’ 이다. 둘째, 자국 문화에 대한 우월감 내지는 타국 문화에 대한 편견을 버린다면 타국 문화에 대해 훨씬 잘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기독교가 한 민족의 종교가 아니고, 하나님이 한 민족만의 하나님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하나님은 온 민족의 경배를 받으셔야 한다는 것도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국인의 하나님을 강요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 아닐 수 없다.

한 민족이, 혹은 한 부족이 하나님을 자기 민족의 하나님, 자국의 하나님으로 먼저 받아들이게 될 때, 나아가서 온 세계의 하나님을 인식할 수 있지 않을까. 놀라운 것은 구원이 우리의 손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가 복음 전파의 한 도구로써 사용될 뿐임을 겸허하게 받아들인다면, 하나님께서 어떻게 한 민족을 변화시키는지 그 민족의 하나님이 되시는지 보게 될 것이다.

이것은 선교사로서 어떻게 성육신적인 사역을 하게 되는지에 관한 세번째 실마리로 이어진다. 그것은 절대적 겸손으로 보인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임을 포기하고 내려오신 그 숨막히는 사랑의 출발점이 겸손이라면, 그리스도인으로서 걸어가야 할 태도 역시 여기에서 찾아야 하지 않겠는가. 성육신 사역이란 그리스도의 그 한없는 겸손이 내 것이 되는 것이다. 나 역시 낮고 낮은 데로, 더럽고 추한 데로, 아무도 가려 하지 않는 곳으로 가야 한다. 그곳으로 갈 뿐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사람을 섬기시기 위해 어떻게 자기를 포기하셨는지에 관해 배워야 한다. 사람과 같아지셨으나 순결하셨던 그리스도의 성육신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같은 일을 하라고 명하시는 것이다.

제자들의 발을 씻기셨던 그리스도께서는, 오늘날 우리가 겸허하게 동료를 섬기고, 전도대상자를 섬기는 모습으로 다시 나타나기를 원하신다. 이렇게 말씀하신 것처럼 말이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