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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취미/Travel

길치, 인생치, 강릉으로 가다 - 첫째날

by 피스메이커 2019. 10. 17.

 

결혼 후 14년이 흘렀고, 우리집 꼬맹이는 중학생이 되었다. 누구의 엄마도 아니고, 누구의 아내도 아니고, 집지키미도 아닌, 내가 나로 살기 위한 혼여(혼자여행). 현재 강릉으로 가는 버스를 타고 있다.
수많은 나에게 말한다, 언젠가 어떤 자리에서 어떤 모습으로 살든 지금 이 시간을 기억할 거라고.

 

 

오후 1시반경에 도착예정이었던 버스는 도중에 밀리더니 30분 늦게 도착해서 2시가 되었다. 인터넷서치로 알아본 육쪽마늘빵으로 늦은 점심을 먹을까 해서 중앙시장으로 갔다. 중앙시장은 월화거리라는 이름으로 조성된 거리 바로 옆에 위치해 있었다.

 

육쪽마늘빵을 파는 팡파미유는 이미 대기자들이 있었고 판매종료 입간판이 걸렸다. 아쉽지만 발길을 돌려 그 다음으로 알아본 중화짬뽕빵으로 찾아찾아갔다.(나는 방향치이다. 앱으로 찾아도 헤맨다)

 

 

 

 

 

 

팡파미유 바로 위쪽에 있었는데 한참 헤맸다. . .
팡파미유에 비해 손님이 없었던 터라 바로 살 수 있었지만, 젊은 사장은 손님이 없어서인지 표정이 굳어있었고 말투도 딱딱해서 좀 무서웠다.ㅡ.ㅡ;
바로 옆에 있는 동그란 의자에 앉아서 먹었다.

 

 

그런데 크기가 너무 작아 요기하기엔 ㅠㅠ 크림치즈빵을 시켰는데 크림이나 치즈맛이 강하지 않았다. 먹을만은 했지만 무슨 맛인지 잊어버릴 것 같은 애매한 맛. . .

 

중화짬뽕빵 바로 옆이다.

계단을 끝까지 오르면 의자에 앉은 소녀가 관광객을 쳐다보고 있다.

계단 맨위에 펼쳐진 다리에 서면 흙바닥이 절반넘게 깔린 하천이 양 옆으로 펼쳐진다. 다리 끝까지도 가보고 싶었지만 폰을 충전해야 해서 발길을 시장쪽으로 돌렸다.

 

다시 천천히 시장을 빠져나오며, 무언가를 찾는 것을 멈추니 보이는 것들. 오늘 강릉은 구름이 많이 끼고 바람이 많이 분다.

무월랑과 연화부인의 사연은 어떤 것일까? 자세히 써놨으면 좋았을텐데.

이야기 궁금한 건 못 참는 나에 의해, 아래는 인터넷 검색으로 찾아본 내용이다.

신라 중엽 강원도 명주(강릉) 남대천 남쪽 연화봉 밑에 서출지라는 연못이 있고, 그 못가에 박연화라는 예쁜 아가씨가 살고 있어 날마다 못가에 나와 고기에게 밥을 던져 주었다. 이렇게 몇 해를 지내자 고기떼들은 연화의 발걸음 소리만 나도 물 위로 떠올라 모여 들었다. 어느 봄날 하루는 연화가 못가에 나와 있으려니까 웬 서생이 자기를 보면서 못가를 서성이고 있었다. 여러 날이 지나 그 서생이 한 장의 편지를 떨어뜨리고 가므로 이상히 여겨 주워보니 그것은 자기에게 사랑을 고백한 내용이었다. 서생의 이름은 무월랑이었다. 다음날 답장을 썼는데, "부모가 계시기 때문에 여자로서는 아무렇게나 경거망동할 수 없는 것입니다. 부디 당신이 저를 사랑하신다면 더욱 글공부에 힘써서 입신양명을 하시면 그때 부모의 승낙을 받아서 당신의 아내가 되겠습니다. "라는 내용이었다. 그 말에 감동된 무월랑은 서울(경주)로 가 열심히 학문에 전념하고 있었다. 한편 연화의 집에서는 나이가 과년하므로 혼처를 정하고 오래지 않아 날을 받아 성례를 시키려 했다. 그를 안 연화는 편지를 써가지고 못가에 나와, "너희들은 오랫동안 내 손에 밥을 먹고 자라 왔으니 내 간절한 사정을 서울로 간 뒤 한 장의 편지조차 없는 낭군에게 전해다오."라고 사람에게 말하듯 하면서 그 편지를 물 위에 던졌다. 그러자 그 중에 가장 큰 잉어가 편지를 물고 물속으로 들어가 가 버렸다. 한편 서울에 온 무월랑은 어느날 어머니에게 드리려고 큰 물고기를 한 마리를 사가지고 와 배를 가르니 이상스럽게도 그 속에 편지 한 장이 있으므로 펼쳐보니 그 편지는 분명 연화가 자기에게 보낸 급한 사연이었다. 이를 보고 무월랑은 자기 부모에게 자세한 이야기를 하고 그 길로 명주로 말을 달려가니 마침 새신랑이 문으로 막 들어가려는 순간이었다. 급히 가로막고 연화의 부모를 불러 그들의 진실한 사랑 관계를 이야기하니 그 부모가 이르기를, " 이 지극한 정성이야말로 진정 하늘까지 뜻이 통할 만한 일이다."라고 하면서 새신랑을 보내고 무월랑을 사위로 삼았다.

출처: http://www.culturecontent.com/content/contentView.do?search_div=CP_THE&search_div_id=CP_THE004&cp_code=cp0521&index_id=cp05211246&content_id=cp052112460001&search_left_menu=4 

 

무월랑과연화 - 문화콘텐츠닷컴

무월랑과연화 갈래 : 전설 시대 : 삼국 신분 : 일반 지역 : 관동 출처 : 편집부 () 내용 :신라 중엽 강원도 명주(강릉) 남대천 남쪽 연화봉 밑에 서출지라는 연못이 있고, 그 못가에 박연화라는 예쁜 아가씨가 살고 있어 날마다 못가에 나와 고기에게 밥을 던져 주었다. 이렇게 몇 해를 지내자 고기떼들은 연화의 발걸음 소리만 나도 물 위로 떠올라 모여 들었다. 어느 봄날 하루는 연화가 못가에 나와 있으려니까 웬 서생이 자기를 보면서 못가를 서성이고 있었

www.culturecontent.com

관노가면극이라는 공연을 실제로 하는지 궁금하다.

http://folkency.nfm.go.kr/kr/topic/detail/3149

 

강릉관노가면극

강릉단오제 때 펼쳐지는 탈놀이로 춤과 동작을 위주로 한 국내 유일의 무언(無言) 가면극. 관노(官奴)라는 특수한 신분에 의해 이루어진 놀이이다. 우리나라 다른 가면극에서 볼 수 있는 양반에 대한 신랄한 풍자나 저항의식보다는 단오제라는 제의를 중심으로 서낭제 가면놀이의 전통을 충실히 엿볼 수 있어 흥미롭다. 단오제 때 행해지는 놀이들과 함께 잘 보전되어 중요한 기능을 한다.

folkency.nfm.go.kr

 

혹시나했는데, 비가 온다. 경포대 노을 사진을 찍는 것이 목표였는데.
자주 안 오는 버스를 잡으려고 우산 사는 걸 포기하고 허균생가로 가는 버스를 탔다. 비 따위가 내 길을 막을 순 없다.
계속 나자신에게 묻던 질문.
- 여행을 왜 하고 싶니?
별달리 신기한 걸 보는 것도 아닌데, 사람 사는 곳이야 비슷비슷한데.
익숙한 걸 포기하고, 낯선 것에 도전하는 것은 익숙한 것에 지치기 때문이다. 익숙할 때는 보이지 않는 것들, 패스트푸드점의 낡은 의자들, 주변은 신경쓰지 않고 떠드는 나이지긋한 남자, 강릉, 대관령, 주문진이라는 간판들, 관광객을 모으기 위해 인위적으로 조성된 거리, 비 맞는 것도 불사하게 된 내 모습.

다음 여행시 주의사항!
- 날씨를 확인할 것
- 보조배터리를 챙길것
- 네*버지도앱은 버스정보가 틀릴수 있으니 기사님께 물을 것

 

놓치지 않으려 우산도 안 사고 탄 버스는 허균생가 방향이 아니란다. 맘씨좋은 기사님이 약간 앞서 내려주셨는데, 문제는 비가 본격적으로 쏟아지기 시작했다는 거다.
비 맞고 안 맞고의 문제가 아니라 추워지기 시작했다는 거고 여벌옷도 안 갖고 왔다는 거다. 그저 1박2일의 소박한 여행을 하고 싶었을 뿐인데 갑자기 일이 뜻대로 안 풀리기 시작했다.
비를 맞으며 허겁지겁 빠르게 걷기 시작했다. 그저 소나기이길 바랐지만 날씨앱은 하루종일 비예고를 했다. 빗속을 걷는데, 갑자기 20여년전 강릉의 바다로 남친이랑 왔던 일이 생각났다. 백사장에 텐트를 쳤지만 밤새 오는 비에, 새벽 내내 텐트 밑에서 물을 뺐고 우린 다음날 당장 텐트를 걷고 철수했다. 철수하자마자 비가 그쳤다.
그리고 오늘 날씨예보를 확인하지 않고 룰루랄라 온 나를 비웃는 것처럼 비가 또다시 온다.
주변에 인프라는 드문드문 선 카페와 음식점 정도. 마구 쏟아지는 비를 피하기 위해 옆 카페 건물로 들어갔는데 카페 영업을 안 하는 건지 잠겨있다. 그나마 처마 끝에서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 우두커니 서서 고민을 되풀이했다. 생가 입구는 바로 앞쪽이었다. 생가로 가보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는데 비가 너무 많이 왔다. 버스정류장도 어딘지 모르겠는데 좀 걸어야 할 것 같고. 돈 안 쓰고 구두쇠여행을 하려 했는데, 여기서 졌다. 카*오택시를 불렀다. 아무리 불러도 오지 않는다.
황망한 마음에 멍하니 있다가 비가 조금 잦아진 것 같길래 그냥 생가쪽으로 걸었다.

비를 피하고 있는 카페 앞쪽, 생가 입구이다.

 

고택, 기와집을 어릴 때부터 얼마나 많이 봐왔던가. 하지만 장소나 건물이 특별해지는 것은 그곳과 연관된 기억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스스로 결정해서, 우여곡절 끝에 찾은 허난설헌과 허균의 생가.

뜻밖에도 세 명의 사이좋은 손이 먼저 와 비를 피해 마루 끝에 걸터 앉아 있었다.

이 곳에서 이 특별한 남매가 자랐다. 수백년 전의 시간이 돌아온 것처럼 생생해졌다. 바로 눈 앞에서 생활하고, 공부하고 있는 것처럼

사이좋은 벗들이 떠난 그 자리에 나도 걸터 앉아보았다. 아무도 없고, 아무것도 들리지 않고 고즈넉한 분위기 속에서 비만 추적추적 내린다. 현대적인 거라고는 한 켠에 있는 소화전과 나 뿐이다.
금방이라도 저 대문으로 두루마기를 입은 나이 지긋한 선비가 들어설 것만 같은, 그리고 내가 앉아있는 이 마루에 고운 치마저고리의 여인이 서 있을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나는 혹시 2019년이 아니라 1600년대의 어느 날에 있는 게 아닐까. 내가 사랑한 판타지가 실현될 것만 같은 이 묘하고 압도적인 기분에 취해 언제까지고 이곳에 있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춥지만 않았어도.

기념관이 있다고 팻말은 있는데 어딘지 못 찾아서(관리가 너무하네)<------오해였다
앞으로 나오니 버스정류장이다. 비오는데 바람까지 불기 시작하니 패딩조끼를 입어도 춥다. 어쩔 도리가 없어 그냥 정류장에서 기다리다가 택시를 잡았더니 예약된 택시였다. 앞에서 한 손님이 타더니 차가 내 앞에서 멈추며 어디까지 가냐는 거다. 옳다꾸나.
"중앙시장까지요"
터미널까지 가는 손님을 내려주고 그쪽까지 가주겠단다. 감사합니다. 택시를 탔다.
가는 길에 앞에 앉은 남자가 얘기를 시작한다. 자기는 뇌출혈로 죽을 뻔해서 병원 이곳저곳을 다녔는데 손을 쓸 수가 없었단다. 그러다가 환상 중에 자신을 데리러 온 두 천사를 봤는데 천사가 자신을 그냥 두고 가서 살았다는 것이다. 그 후에 자신은 천국과 지옥이 있다는 걸 확실히 믿게 되었다고 기사에게 교회를 다니라고 했다.
기사는 오늘이 자신의 마지막 운행일이며 오늘을 끝으로 은퇴한다고 한다. 여러가지 얘기를 듣던 중 앞에 앉은 남자는 내게도 교회를 다니라고 말한 후 차에서 내렸다. 교회를 다니냐고 물어보지도 않고? 나는 그냥 웃으며 "네~"라고만 했다.
비는 더 퍼부었고 나는 게스트하우스 주소를 알려주려 했으나 길을 못찾는 거 같아 네비를 틀어주었다. 골목으로 들어가는 것에 난색을 표하길래 그냥 앞에서 내려달라 했고 택시비를 물었다.
아깐 분명 터미널에서 시장 가는 요금만 내면 된다고 한 것 같은데 8천원을 부른다. 미터기를 끊지 않는 이유를 구구절절히 설명하고 카드도 안 받고.
아까 생가 근처에서 카카오택시요금을 봤을 때 6800원이었는데. 돈 욕심 없다는 소리는 왜 한거냐
시행착오비라 생각하고 그냥 줘버렸다. 그것보단 기분좋게 타서 기분나쁘게 내리고 싶지 않았을 터였다.


다시 비오는 골목을 헤매다가 간신히 찾은 반가운 내 첫 게하(게스트하우스). 평점 좋고 싼 곳, 위치도 괜찮다.
오늘밤 내 쉴 곳이 되어줄 하얀 시트다. 가난한 여행자들의 친근한 벗인 너, 게하. 18천원에 셀프조식까지 포함, 훌륭하다!
그렇게 여행 첫날, 우렁차게 내리는 강릉의 빗줄기에 막혀 일찍 잠자리에서 뒹굴뒹굴했다.